문학소설

마음 속 달 하나쯤 품고 살아도 좋지 않을까. <The Moon and Sixpence>

by Scott posted Aug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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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on and sixpence.jpg


밤늦게 집에 와보니 엄마는 고추와 씨름을 하고 계신다. 요 며칠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고추를 널었다 거두기를 수도 없이 반복 중이다. 옥상에 고추를 다시 너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태풍 솔릭의 북상으로 한반도가 들썩이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엄마에겐 무엇보다 고추를 빨리 말려야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밤하늘에 달이 떴으니 비는 안 내릴 것 같다며 기어코 옥상 바닥에 널어놓으셨다. 

이놈에 고추 새끼 깡그리 다 없애버리고 싶다. 지독한 놈. 매년 여름 이놈 때문에 내 수명이 단축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고춧가루를 사던가 김치를 사 먹던가 하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야 이젠 내 입만 아플 뿐이다. 나는 조용히 입을 봉하고 그저 일을 도왔다. 옥상 바닥이 고추로 시뻘겋게 물들었을 즈음 엄마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비셨다. “하늘이시여, 태풍이 사라지게 하소서!” 나도 소원을 빌었다. “고추야! 너도 태풍과 함께 사라져라.” 엄마와 나는 그렇게 잠시 동안 각자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희망하며 달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달을 계속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그 속에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노랗게 익은 그 달이 내 마음속 무언가를 자극한달까? lunatic 이란 단어가 미치광이 혹은 정신병자와 관련이 있는 게 괜한 건 아닌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광(狂)자는 으레 예술가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예술가 하면 무언가에 미쳐있는 모습이 바로 연상된다. (나만 그런가?)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 : The Moon and Sixpence 달과 6펜스
저자 : W. Somerset Maugham 윌리엄 서머셋 모옴

찰스 스트릭랜드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한 가정을 책임지는 평범한 가장이다. 시쳇말로 평범함을 빼면 시체인 그냥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편지 한통만을 남겨둔 채 홀연 가정을 떠나버린다. 주변에선 어떤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는 소문까지 자자하다. 하지만 실제 밝혀진 바로는 여자는 없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집을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팩트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목말라 있다.

“I tell you I've got to paint. I can't help myself. When a man falls into the water it doesn't matter how he swims, well or badly: he's got to get out or else he'll drown."

“정말 당신은 지독한 바보로군.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 마음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요. 물에 사람이 빠졌을 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가 되겠소? 어떻게 해서든지 물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것 아니겠소?” 


찰스 스트릭랜드는 미치고 싶지 않아서 미쳐버리는 것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간 스스로를 너무 억누르며 살아왔다. 어릴 적 그림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림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17년이라는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욕구를 계속 억제하며 살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사회가 정한 행동 양식을 중시하며, 그 테두리 안에 자신을 맞추고 거기서 안주하며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되길 원한다. 사회로부터, 관습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이런 특징은 그의 작품에도 해당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남들에게 팔지도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마저 타인의 잣대로 평가받길 거부하는 자이다. 그는 기존의 정해진 틀 속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

그리고 여기 찰스 스트릭랜드와 대척점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더크 스트로브다. 그 역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며, 유명하진 않지만 제법 그의 그림은 잘 팔린다. 어느 순간 그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에서 강렬한 기운을 감지한다. 찰스에게서 예술가적 기질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와 같은 예술가가 되려 애를 쓴다. 한번은 찰스에게 자신의 그림이 어떠한지 평가를 부탁한다. 하지만 혹평만이 돌아올 뿐이다. 찰스의 관점에서 보면 더크 스트로브는 예술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예술가가 되길 갈망하지만 정작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정해진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을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작품에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죽은 예술이 된다.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가 한 ‘구체적 행동’을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는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와 자식들을 저버렸고, 친구의 아내를 빼앗았으며, 그리고 또다시 버렸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할 줄 아는 ‘용기’ 그것만은 너무나 부럽다. 갖고 싶다. 나 같은 그저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다.

"Look here, if everyone acted like you, the world couldn't go on."

"That's a damned silly thing to say. Everyone doesn't want to act like me. The great majority are perfectly content to do the ordinary thing."

“만일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은 곧 끝장나버릴 겁니다.”


“어리석은 소릴 다 하는군. 나같이 처신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할 것 같소? 대부분의 사람은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이오.”


ordinary 에서 벗어나면 extraordinary 가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