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읽기 시작하면서 문법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나서 퍼왔습니다. ==================================================================================================
"저는 영문법이 너무 어렵고 싫어서 영어를 포기했어요."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영문법이 어렵고 재미없어 영어를 포기했다는 사람이 무려 30%가 넘는다.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큰 문제점이 있다.
한국적 영문법 교육이나 학습방법이 영어를 10년 공부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최근 사회적으로 영어교육의 비효율성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런 비효율성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의 중심에는 한국적 영문법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규칙을 암기했다가 시험 보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식의 한국적 영문법 학습은 21세기에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금의 문법 교육은 무엇이 문제이고, 영문법은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중급 수준이 될 때까지는 영문법을 공부하지 말라
이는 영어교육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드앨리스(Rod Ellis)가 단골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특히 어린 학습자들에게 영문법을 규칙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은 학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영문법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다. 영어라는 언어 자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언어의 복잡한 규칙부터 이해하고 암기하게 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이런 방식으로 문법을 공부하게 되면 영어가 싫어지고 영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영문법을 공부하기 전에 우선 영어자료를 많이 듣고 읽게 하라. 그러면 영어 단어나 문장의 구조 등에 대해 감이 잡힌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문법 규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영어에 대한 감을 잡은 후 영문법을 공부하면 단순 암기에 의존하지 않고, 원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때는 거의 다 아는 내용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자신의 수준에 맞는 문법 기본서를 2~3회 읽으면 된다. 이렇게 영문법을 공부하면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또한 그 복잡한 영문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에 차라리 학습자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영어 동화책 같은 것을 더 많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문법을 몰라도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모든 언어에는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주어, 동사, 목적어, 형용사, 부사 등은 모든 언어에 다 공통으로 존재한다. 단지 배열순서나 쓰임 등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영문법을 가르치는 우리나라 학부모와 교강사들 중에는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급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학습자에게 영문법을 전혀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영문법을 배우되 폭넓은 읽기와 듣기를 통해, 혹은 통 문장 단위 사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익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규칙암기 중심에서 '노출 먼저, 그다음 규칙 이해' 방식으로 바꾸라
우리나라의 많은 영문법 책이 설명을 먼저 보여주고, 이어서 예문들을 제시한다. 다음 예를 보자.
To 부정사의 주어가 문장의 주어나 일반인이 아닐 경우에는 'for+목적격+to 부정사' 형태로 to 부정사의 의미상 주어를 밝혀준다.
It's necessary for kids to drink milk.
There's not enough pizza for everyone to share.
What should I do? It's too hard for me to decide.
여기서 "To 부정사의 주어가 문장의 주어나 일반인이 아닐 경우에는 'for+목적격+to 부정사' 형태로 to 부정사의 의미상 주어를 밝혀준다."라는 설명이 이해가 되는가? 이런 식으로 규칙을 암기하며 영문법을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순서를 거꾸로 바꿔보라. 먼저 영어 예문의 구조부터 눈으로 익히고 해석해보라.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면 되었지, 그에 대한 어렵고 복잡한 영문법 규칙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영문법 규칙에 대한 복잡한 설명은 문법학자나 문법책 저자들에게나 필요하다.
문장 내의 단어만 알면 대충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데도 괜히 어려운 영문법 설명을 먼저 꺼내서 학습자의 기를 죽일 필요는 없다. 앞으로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도 어려운 문법을 설명하는 시간에 차라리 학생들이 실용적인 예문 몇 개라도 더 읽고 해석해보게 하자. 그러면 우리나라 영문법 교육의 효율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영문법은 독해·듣기와 함께
지난 칼럼에서는 1. 중급 수준이 될 때까지는 영문법을 공부하지 말라, 2. 규칙암기 중심에서 '노출 먼저, 그다음 규칙 이해' 방식으로 바꿔라. 이상 두 가지 시사점에 대해 설명했다.
3. 늦게 터득되는 까다로운 영문법 요소 학습은 뒤로 미뤄라
관사나 시제 일치 같은 문법 사항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자주 틀리는 부분이다. 심지어 미국의 부시 대통령조차도 'Is our children learning?'처럼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사용해서 종종 구설에 오르곤 했다.
영문법의 수많은 요소는 대략 습득되는 순서가 있다. 관사의 정확한 사용, 가정법의 정확한 사용 등은 고급수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터득될 수 있으므로 기다림이 필요하다.
4. 잘 쓰이는 실용적인 문법부터 익혀라
대부분의 우리나라 영문법 교재는 자주 쓰이지 않는 필요 없는 영문법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평생 한두 번 쓸까 말까 하는 문법 사항까지 일일이 수록한 교재가 허다하다. 참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대표적인 예가 화법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타인의 말을 전할 때는 그대로 전하든가(=직접화법), 말의 요지를 전달자 자신의 언어로 바꾸어 전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문법 교재에서 다루는 복잡한 간접화법 규칙은 사실상 별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5. 자신의 수준에 맞는 영문법부터 배워라
여기서 말하는 '자신의 수준'이란 어떤 문법 예문을 봤을 때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거나 문법 설명을 읽고 이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문법을 명시적으로 지도할 때 아직 학습자가 언어심리학적으로 특정 문법 요소를 배울 수준이 되기 전이라면 가르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며 곧 사라진다.'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초급 수준 학습자에게 5문형, 2문형은 3, 4문형에 비해 어렵다. It...that 강조 용법, 가정법, 분사 구문 등도 다른 내용에 비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처음에는 형태와 의미를 살짝 이해하는 수준으로 넘어가더라도, 차츰 영어공부량이 늘어나면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문법 사항까지 하나둘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이 영작한 내용의 문법적 오류를 아무리 잘 수정해 주어도 계속해서 같은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 아직 그 문법을 바르게 적용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문법 실력은 영어를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향상된다. 이것이 영문법이 터득되는 원리다.
6. 영문법은 반드시 상황 속에서 익혀라
영문법을 상황 속에서 익힌다는 것은 영문법을 독해나 듣기 자료 속에서 접하고 익히는 것을 말한다. 낱개 문장으로만 구성된 영문법 책으로 공부하면 나중에 대화나 글 속에 그 문법 사항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없다.
상황 속에서 영문법을 익히면 그 영문법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 알 수 있고, 불필요한 우리말 설명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현재완료'와 '현재완료 진행형'에 대한 다음 예를 보자.
a. They've been painting the kitchen.
b. They've painted the kitchen.
예문을 위와 같이 단문으로 주면 두 문법 요소의 차이를 밝혀주는 자세한 우리말 설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A: What a mess!
B: Yes, they've been painting the kitchen.
A: The flat is looking nice.
B: Yes, they've painted the kitchen.
그러나 위와 같이 전형적인 상황을 통해서 예문을 보여주면 학습자 스스로 두 시제가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감을 잡게 된다. 이를 통해 나중에는 상황에 맞게 쓸 수 있게 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1974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