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문명권의 통치체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수메르 문명권의 각 도시들의 왕을 파테시(patesi)라고 불렀는데, 신관과 왕을 겸했습니다.
기원전 2800년경부터는 무역규모가 커지게 되어, 서로 파테시를 제압하고 합종연횡하면서 수메르 지역은 경제정치적으로 통일된 제국이 되었습니다.
The despot lived in a Renaissance atmosphere of violence and fear; at any moment he might be despatched by the same methods that had secured him the throne. He dwelt in an inaccessible palace, whose two entrances were so narrow as to admit only one person at a time; to the right and left were recesses from which secret guards could examine every visitor, or pounce upon him with daggers.
그 폭군들은 폭력과 공포가 뒤섞인 르네상스 분위기에서 살았다. 언제라도 그는 자기가 왕좌를 차지했던 같은 방식으로 처치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접근하기 곤란한 왕궁에서 거주했고, 출입구 두 곳은 너무 좁아서 한번에 한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방문자들을 감시하거나 단검으로 제압할 수 있도록 좌우 양쪽 벽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비밀경호원들이 있었다.
왕은 전리품 약탈 같은 솔직한 목적으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전쟁포로는 노예로 팔렸고, 때로는 신의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메르 각 도시들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적 분리주의로 인해 폭력과 투쟁으로 점철되었고, 결국 수메르 제국은 자멸하게 됩니다.
수메르 제국은 봉건체제와 법으로 통치했는데, 함무라비 법전도 이 수메르의 법전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수메르 법전은 셈족의 법전과는 달리 엄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셈족의 법전에서는 간통한 여성을 죽이도록 규정했지만, 수메르 법전에서는 남편에게 두 번째 아내를 들일 수 있게 허용하고, 첫 번째 아내를 종속적 지위로 격하시켰을 뿐이었습니다(the Semitic code killed a woman for adultery, the Sumerian code merely allowed the husband to take a second wife, and reduce the first to a subordinate position.).
The best element in this code was a plan for avoiding litigation: every case was first submitted to a public arbitrator whose duty it was to bring about an amicable settlement without recourse to law.
이 법전의 가장 훌륭한 요소는 소송예방책이었다. 모든 사건은 법에 의하지 않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임무를 지녔던 공공중재인의 중재를 먼저 거쳐야 했다.